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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는 53개국의 나라와 188여개의 언어가 사용되고 있고, 우간다에만 52종의 언어가 쓰입니다. 아프리카는 적도를 중심으로 북쪽은 주로 기독교와 남쪽은 이슬람교로 구분될 수 있습니다.
우간다는 동아프리카에서 육지로 둘러진 나라로서 "아프리카의 진주"로 불립니다. 우간다의 오른 쪽은 케냐, 북쪽은 남수단, 왼쪽은 콩고민주공화국, 남서쪽은 르완다와 남쪽은 탄자니아입니다. 케냐의 남쪽은 탄자니아와 국경을 맞대는 빅토리아 호수 지역입니다.1965년도만해도 우간다는 경제발전 정도가 한국과 비슷했습니다. 그러나 1971년-79년까지의 식민지 시대 이후의 독재자 이디 아민의 군림으로, 현재의 남한은 경제대국을 이루었지만, 우간다는 피폐해졌습니다. 이디 아민으로 인해 우간다는 빈곤해졌고, 교육은 뒷걸음질쳤고, 복음적 교회들은 폐쇄되었습니다. 그는 초등학교 4학년까지 밖에는 교육받지못한 사람으로, 우간다에서 아시아인과 유럽인들을 추방하였고 온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었습니다.
이후 자유를 얻으면서 경제적 정치적 종교영역에서도 성장이 있었고, 우간다에 평화와 번영과 기독교회의 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반복하기 마련이라 올해 총선이루에 평화가 우롱당하는 것 같습니다. 무슬림 근본 주의자들을 포함한 무슬림들이 가다피 펀드로 무슬림 성전 짓기, 학교설립과 무슬임 자선단체 설립 운동을 통해 그 세력을 넓히고 있습니다.
우간다 인구는 1950년에480만명에서 2002년에 24,300,000명으로 증가했고, 2011년 현재는 32400,000명으로 추산됩니다. 우간다의 평균연령은 15세로 젊은 인구가 많은 나라입니다.
우간다는 HIV 를 성공적으로 퇴치하는 몇 안되는 나라에 속합니다. 1980년도에는 우간다 주민의 30%이상이 HIV에 감염되어있었는데, 이런 사실을 숨기지 않고 적극적으로 알리면서, 2006년도의 연구가 보여주었듯이, 현대적 피임도구의 사용이 낮았던 우간다가 퇴치에 열심을 내어 2008년에는 감염도가 6.4%로 줄어들어서, 아프리카 어느 나라보다 AIDS에 적극적 국민적 반응을 불러일으킨 나라가 되었습니다.
우간다의 기독교 : 구교, 카톨릭 41.9%, 신교: (명목상 교인과 복음주의자) 42%, 그외 순복음 교단, 장로교단, 복음주의적 독립교단, 성공회, 전통적 교회: 점차 증가 추세. 이슬람은 국민의 12%이지만, 지하드 성전(거룩한 싸움)의 열정으로 인해 매우 빨리 증가추세되고 있습니다.
우간다는 아프리카에서 정치적, 종교적으로 다른 나라에 미치는 영향이 큽니다. 우간다는 아프리카 각지로 선교사를 파송하는 기지국가입니다. 무슬림 근본주의자들의 행동으로 다른 나라의 선교에 대한 열정이 다시 정체되지 않도록 기도해주십시오.
- 아프리카 적도 이북의 나라들에게 복음이 덜 전파되었는데 이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 기독교 국가라고 알려진 나라들이 복음의 씨앗을 잃지 않도록. - 우간다 북부사람들이 반역행위로 많이 죽었는데 이들에게 사랑과 복음이 필요하다. - 우간다에 있는 한국과 다른 나라 선교사들이 우간다에 선교기지를 두면서 많은 다른 나라에도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 기독교가 더 깊게 뿌리내려, 자급자족하는 교회가 되도록 - 소위 기독교 나라라고 불리우지만 기독교가 다른 아프리카 전통종교와 혼합종교의 모습을 띄고 있는데 이런 모습을 탈피하도록 - 말라리아와 생명을 위협받는 질병으로 매일 죽어가는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위한 기도. 전쟁과 질명으로 부모를 잃은 어린이를 위한 기도.
1,221,037㎢ (세계25위)의 땅에 2009년에 인구 49,320,000명14)을 가져 인구밀도39명/㎢ 인 큰 나라로 아프리카 대륙의 최남단 국가이다. 국민 일인당 소득은 $10,243(2009년)이고, 공용어는 화란어계통의 아프리칸스, 영어와 줄루어와 코사어를 포함한 반투어군 9개 언어이다. 한편 주민은 네덜란드에서 이주한 백인인 보어인과 영국인이 백인종에 속하고, 코사족과 줄루족을 포함한 반투어족이 흑인종에 속한다. 오랫동안 소수의 백인이 다수의 흑인을 지배하던 나라에서 20여년전 흑인정부로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룬 후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나라이다. 종교는 기독교로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는 나라이다
(1) 유럽인들(네덜란드와 프랑스의 위그노)의 이주로 트란스빌 공화국, 오렌지자유국을 건설하였으나 다이아몬드와 금광이 대대적으로 발견되면서 영국의 식민지 정책과 충돌하여 두 차례에 걸친 보어전쟁으로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가 자치권을 인정받았다가 영연방의 일원이 되었다. 소수의 백인이 다수의 흑인을 강압적으로 지배하면서 백인을 위주로 하는 아팔테이트라는 인종차별정책을 펼쳤다. 이에 비폭력을 내세우던 흑인의 저항운동이 ANC(African National Congress, 아프리카 민족회의)의 넬슨 만델라를 중심으로 급진적 투쟁을 선호하게 되었다. 국민당은 심한 탄압으로 일관하였고 UN은 남아공에 대한 고립정책(sanction)을 체결하였다.
(2) 흑인정권과 민주정치시대
1989년 인종차별정액을 주장하던 보타 대통령이 물러가고 디 클락 새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정치범을 석방하고 아프리카민족회의와 범아프리카회의의 정치 활동을 허락하였다. 1990년 2월 흑인지도자 만델라가 수감 27년만에 석방되었다. 194년 4월, 그 시대의 요구에 디 클락 정권의 과감함 결단으로, 일인일표의 흑백 모두가 참여하는 첫 민주선거가 실시되어 넬슨 만델라가 백인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주정부의 첫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루어 디 클락과 만델라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다. 1999년 만델라 대통령은 장기집권의 욕심을 부리지 않고 타보 움베키 부통령을 대통령 후보로 지명하여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정치적 평화가 지속되게 하였다.
(1) 아프리카 다른 지역은 백인이 식민통치를 했지만, 이 지역에서는 백인이 아프리카에 이주하여 스스로 아프리카인이 되기로 결심하였고 자신들을 아프리카인(Afrikaners)라고 불렀다. 물론 원주민에 대한 착취와 갈등이 있었지만, 거주 지역을 영원한 고향으로 생각하였다.
(2) 아프리카에서의 선도적인 위치 : 평화적 정권교체의 모범을 보임.
백인정권에서 흑인정권으로 전환하는데 전쟁이나 쿠데타없이 평화적 정권교체의 모범을 보였고, 같은 흑인국가로서 아프리카 다른 나라와 동질의 유대감을 가질 가능성이 많다. 또한 정치상황의 안정을 통해 지속적인 경제발전이 가능할 수 있음을 보인 예가 된다.
아프리카의 정치 불안정이나 종적간의 갈등에서도 보듯이, 아프리카에서는 정권 교체시기에 무자비한 폭력이 행사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와는 달리, 인종차별에 대한 저항이 폭력과 복수로 점철되지는않았다. 흑백의 정권 교체시기에 진리와 평화를 위한 청문회(Peace and truth committee)를 통해 흑인의 탄압과 관련된 가해자와 피해자의 사실을 시인하는 고백적 증언이 있었고, 복수극을 펼치지 않고 용서와 화해를 통한 국민대통합을 이루어내었고, 평화적으로 정권을 교체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겨 아프리카 전역에 좋은 모범이 되고 있다. 남아공의 Afrikaners 종교지도자들이 인종차별에 침묵하고 묵과한 점은 잘못되었으나 그것이 “죄”였음을 공적으로 시인하였다.
특히 정권교체시기에 흑인 모두에게 한 표씩 선거권을 주며 정권은 당연히 바뀔 것을 알면서, 불안한 시기에 매일 시간을 정해, 마을의 교회종이 울리면 모두가 일손을 놓고 주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을 구하며 기도했다. 마침 이웃나라 짐바브웨가 흑인정권으로 바뀐 후 백인에 대한 학살사건들이 일어났지만, 불안한 속에서도 흑인들을 신뢰하며 새로운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 그 결과 흑백의 정권교체가 평화적으로 실행되었고,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다.
흑인정권으로의 교체시기에 남아공은 아프리카 각지로부터 많은 인구가 유입되어 무허가 흑인빈민가들이 급격히 늘어났고 이에 따라 구직난과 생활고, 사회구조의 변화에 따른 혼란 등이 매우 심해졌다.
(1) 영적부흥 :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기독교 인구비율은 73.52%라고 알려져 있으나, 실제 흑인 카엘리차 지역사역을 하는 선교사의 리서치는 카엘리차 인구의 2.86%만이 정기적으로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고 한다. 기독교 국가라고 알고 있지만 실제 많은 흑인인구에게 복음이 절박하게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2) 현지교회 리더십의 강화를 위한 교육과 지원이 필요
남부 아프리카의 11개국에 2006년에 한인 선교사 252명이 사역15) 중인데 이중 남아공화국에 79가족과 16 독신선교사가 있어 총 174명의 선교사 사역하고 있다. 한인선교사의 사역 기간이 8년이하가 66%로 짧은 편이다. 한인선교사들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학교교육 및 성경교육의 기회를 제공하여 꿈과 비전을 심어주고, 컴퓨터 기술을 가르치고, 지역공동체에 우물을을 파서 물을 공급하고, 학교와 병워을 설립하고 낙후된 지역을 개발하고, 에이즈 고아들을 돌보며, 병자들을 치료하는 등 남부아프리카의 선교적 요구를 충족시키고 있다. 먼저 듣는 자세를 통해 현지인들의 필요를 살피고, 정부로부터 지역개발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얻고, 지역교회 및 단데들과 협력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1) 다중문화에 대한 적응 및 다중언어 습득
(2) 현지교회가 자립(self-supporting), 자치(self-governing), 자전(self-propagation)하는 교회로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선교사들이 중심에 서기보다는 현지교회를 돕는 조력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말씀을 통한 제자훈련과 교회리더십개발에 힘쓰고 또한 지역 교회들과 지속적으로 협력하여 목회자훈련을 실시하는 등 지역교회들의 성장을 도모하도록 겸손한 자세로 섬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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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아비장한인교회 담임목사
이명석 교수는 성균관대학교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하고(B.Eng.),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M.Div를 취득한 후, 장신대학교 세계선교대학원에서 선교학 석사(ThM in Miss)를, 가나의 Akrofi-Christaller Institute에서 Andrew Walls 교수와 그의 제자 Allison Howell의 지도하에 Ph.D.를 취득하였다. 1994년부터 8년간 구로동 갈릴리교회에서 이주노동자 선교사역을 했으며, 1999년부터 2002년까지 기독교복음방송에서 방송국장과 본부장을 역임했다. 2002년부터 20여년간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파송 선교사로 가나장로교단과 독일 팔츠주교회와 함께 선교동역자 사역을 했다. 장신대 선교학과와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에서 객원교수로 강의했다. 이명석 교수가 관심을 가지는 분야는 환경, 생태,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기저종교, 세계관, 문화와 기독교 선교이며, 이 주제 대한 글들을 저술해왔다. 현재 수원성교회(예장통합) 협동목사이며, 아내와의 사이에 결혼한 아들을 두고 있다.